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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쾌락 추구에 대한 생각

인간은 본질적으로 쾌락을 사랑하는 동물이다.

많은 사람이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 행복이 무엇이냐 물으면, 대개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이 이어지고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덜 받는 상태라고 답한다. 그런데 막상 행동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킬 때가 많다. 이를테면 연인이나 배우자를 그릴 때는, 외모가 아름답거나 멋지면서 동시에 재산과 능력까지 충분한 사람을 바란다. 그러면서도 그런 사람과 함께 누리는 소소한 일상이 곧 행복이라고 말한다. 이건 사실 꽤 큰 착각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몸은 우수하거나 희소한 가치를 지닌 이성을 보거나 그런 상대와 가까워질수록 더 강렬한 쾌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듯하다. 그렇다면 연인이나 배우자로 그런 사람을 꿈꾼다는 것 자체가, 앞서 말한 '평온한 행복'과는 전혀 다른, 상당히 큰 욕심인 셈이다. 유튜브에서 빼어난 몸매와 외모, 매력적인 노래나 춤, 말솜씨를 가진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팔로워를 거느리는 것을 떠올려 보자. 사람들이 그들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성적 매력을 가진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가 광고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것은, 시스템이나 인센티브 설계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다. 그게 우리 몸이 작동하는 방식 그 자체일 뿐이다.

여러 가지 매력적인 조건을 갖춘 이성과 소소한 일상을 누리고 싶다는 바람에는, 사실 잘 드러나지 않는 욕망이 숨어 있다. 그 상대 역시 소소한 일상에 만족하는 사람이어서, 다른 데 한 눈 팔지 않고 계속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것은 실로 강한 독점욕이며, 내가 원하는 그 매력적인 상대가 더 큰 욕망을 품지 않은 채 잔잔한 행복에 만족하며 언제까지나 그 모습으로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평온하고 잔잔한 일상의 행복을 진지하게 바라는 사람이라면, 연인이나 배우자 역시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조건을 가진 사람을 만나, 제 수준에 맞는 소득으로 큰 욕심 없이 평범하게 사는 쪽을 바라야 앞뒤가 맞는다. 그리고 그런 삶은 사실 지금 당장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지금보다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을 얻으려는 순간 불안이 켜지고, 삶은 그 평온에서 멀어진다. 대신 더 큰 쾌감을 얻을 가능성은 커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로는 평온한 행복을 꿈꾼다면서도, 실은 꽤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강렬한 쾌감을 그리며 산다. 가장 정확히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제든 인출할 수 있는 강렬한 쾌감, 그리고 그것을 늘 손에 쥐고 있는 상태를 인생의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은 그렇기 때문에 인류가 지구를 점령할 만큼 진화적으로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사실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오랫동안 나는 평온을 원한다고 믿으면서, 정작 마음이 향하는 곳은 늘 그보다 강렬한 무언가였다. 그리고 그 불일치를 들여다보는 일을 오래도록 피했다. 인생을 괴로움에 빠뜨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 — 자신이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모르는 것, 더 정확히는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정곡을 찌르는 말이나 글을 자꾸 피한다. 그런 회피는 자기 욕망이 비치는 것이 불편해서 외면하는, 일종의 방어에 가깝다. 남에게라면 모를까, 자기 자신에게까지 그렇게 오래 피하다 보면 언젠가 문제가 터지지 않을까 싶다.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진 생물학적 목표와 머리로 세운 인지적 목표가 어긋난 채 오랜 시간이 흐르면, 어느 날 문득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길을 걸어왔음을 깨닫고 뒤늦은 후회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사람들이 자기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이를 유독 싫어하고 공격한다는 점이다. 나는 이 미움이 단순한 위선만은 아니라고 본다. 인간 사회가 욕망의 솔직한 표현을 금기로 삼은 데에는, 공동체를 지키려는 오래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열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열 사람 모두가 같은 욕망을 품고 있어도, 겉으로는 저마다 다른 말을 하거나 욕망을 감추는 편이 이로울 때가 있다. 그 이유를 정확한 언어로 옮기기는 어렵지만, 어쩌면 우리 안에서 의식과 무의식이 아직 깔끔히 나뉘지 않은 탓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서로의 욕망이 같다는 걸 눈치채더라도, 누군가 그것을 입 밖에 내기 전까지는 저마다 자신을 지킬 명분이 있고 - 바로 그 침묵이 주는 안전함이 관계를 안정시킨다.

그러니 모두가 같은 것을 욕망하면서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 그 침묵은, 단순한 거짓이 아니라 일종의 합의인지도 모른다. 누구도 먼저 입에 올리지 않는 한, 우리는 서로의 욕망을 짐작하면서도 모르는 척 안전하게 곁에 머물 수 있다. 어쩌면 그 작은 거짓말이야말로, 같은 것을 바라는 사람들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함께 살아가게 해 온 가장 오래된 기술일 것이다. 다만 그게 나 스스로에게까지 침묵하도록 만드는 것은 오히려 스스로에게 가장 큰 피해를 주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