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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주류와 삶의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 (3)

Written on 2025-11-30

매우 예민하고 쉽게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 중 사회 주류와 다른 가치관을 타고난 사람들이 많다. 문학,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이나 기초 학문, 종교, 봉사와 사회 운동, 가족을 비롯한 공동체 등등에 몰두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그런데 이같은 경향성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도 아니며, 실은 매우 예민한 특성이나 쉽게 불안을 느끼는 속성 자체 역시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그것이 개인의 가치관과 관련이 있는지조차 아무것도 입증된 것이 없다. 유튜브나 책 등에서 HSP라고 해서 매우 예민한 성향의 사람들을 구분해서 설명하는 의료인이나 상담가가 있지만, 엄밀히 말해 아직까지는 모두 추정에 속한다. 아직 사람의 정신세계를 뚜렷하게 구체화해서 설명할 수 있는 기술도, 연구도 부족한 상태다. 다만 현재까지 이루어진 관련 연구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은 고전 문학 작품과 철학서적들, 역사적 기록, 문학을 비롯한 예술가, 학자, 종교인, 봉사와 사회운동가들의 공통점을 추론해 볼 때 모든 것이 위의 내용을 가리키고 있다고 볼 여지는 충분하다.

주류의 가치는 주로 사회에서 '성공'이라고 칭하는 가치를 뜻한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자산을 축적하고,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권력과 명예를 얻는 등등. 이 모든 것은 생물로서의 인간이라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원하는 것이자 인류종의 지속적 생존을 위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가치들이다. 비주류 가치관을 타고난 사람들 역시 이런 주류 사회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터놓은 땅, 획득한 자원과 시스템 위에서 비로소 생존과 번영이 가능하다. 하지만 비주류들은 아직까지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여러 이유 때문에 이런 주류의 가치관에 위협을 느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쉽게 큰 불안을 느낀다.

이것은 왜 비주류들이 현생까지 살아남았는지를 살펴보면 어느정도 이해가 가능하다.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 활동이 사람들에게 주는 삶의 풍요, 기초 학문이 장기적으로 인간 사회에 끼친 유익한 영향, 파시즘과 민족주의로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 세계대전에 대한 비판적 통찰, 인류 역사 내내 서민들이 마음의 안식처로 삼았던 종교들, 공동체가 파괴되는 과정에서 그 공동체를 봉합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헌신 등등은, 그 수가 다수가 될 필요는 없지만 인류종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가치들이기 때문이다.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비주류들은 주류들에 비해 신경세포들 자체가 쉽게 피로해지고 쓸데없이 반응성과 염증 발생 가능성도 높은 상태로 볼 여지가 있다. 섬세한 감각, 정밀성 추구, 완벽함에 대한 집착, 불확실한 인간의 내면에 대한 탐구 등은 매우 정교한 작업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따라서 이들의 신경세포들은 주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작동하고, 감각탐지 성능도 훨씬 더 높은, 소위 '신경 활동과 감각의 해상도가 높다' 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만큼 쉽게 지치고, 쓸데없는 고민과 생각에 빠져들고, 그에 따라 몸도 쉽게 피로해질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도 완전한 인과관계가 밝혀진 것은 아니다. 약한 몸을 타고날 경우 뇌신경세포가 좀 더 신경세포를 예민하게 만드는 영향도 있을 것이고, 타고난 몸상태와 상관 없이 유전적으로 예민하고 민감한 신경세포를 갖고 태어나는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 인과관계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으나, 경험적으로 보면 어느정도 타고나는 부분이 큰 것 같긴 하다.

오해하기 쉬운 것은, 다른 가치관을 추구하도록 타고난 비주류들이 주류의 가치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인생의 궁극적 목적을 주류의 가치에 두지 않는다는 것 뿐이다. 다만 비주류들 중 주류 가치에 반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자라면서 겪은 상처의 기억들에 기인한다. 즉, 주류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교육 시스템에 일찍부터 반감을 갖고, 공부 등 사회적 성공을 위해 필요한 기량에 대한 흥미가 없어 어린 시절부터 부모나 학교로부터 상처를 받은 경우다. 사회적 성공을 위해선 마땅히 올라야 할 계단이 있는데, 이는 사회 주류의 정점에 있는 기업가, 자산가, 교육자, 정치인 등등이 필요로 하는 엘리트가 되는 계단을 뜻한다. 이 계단을 오르기 위해선 공부를 잘하고, 지도층이 필요로 하는 기술과 권위에 대한 복종의식을 익히고, 사회 체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비주류로 태어난 사람들은 최종 결과물인 돈과 권력, 명예, 인정욕구 등등은 당연히 원할지 모르나 그것을 얻기 위해 따라야 할 사회 구조에 대해선 거부감을 가진다. 그 과정에서 내적 외적 갈등을 심하게 겪고, 그로 인해 이른 시기부터 자존감 하락을 경험하며 결과적으로 끊임없는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불안은 외부 상황을 완전히 이해 못하고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하는 두려움, 낮은 자존감 등등이 섞여 만들어진 편도체 과활성화 반응이다.

이렇게 개인적인 상처 때문에 주류 가치에 심한 반감을 가지게 된 비주류들은, 감정적으로 주류를 공격하고 싶은 강한 욕망이 생긴다. 과격한 페미니즘, 세속적 욕망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세상의 불공정성이나 부조리함 등에 대한 강한 반감 및 여기서 비롯된 이상주의 등등이 바로 그런 욕망의 결과다. 가부장제와 남성 우월주의가 여성들의 앞길을 막았다는 착각, 좌파나 우파 정치인들이 세상을 망가뜨렸다는 오해, 돈과 권력에 대한 탐욕이 전쟁을 일으켰으니 세속적 욕심을 모두가 줄여야 세상이 평화로워질거라는 착각이 여기에 속한다. 과거 중국에서의 태평천국, 조선 후기의 동학농민운동,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공산주의 이념이 모두 실패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상을 주로 끌어가는 것은 주류이며,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국제관계만 보더라도, 우리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이유는 모두가 욕심을 줄이고 착해져서가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 세계 초강대국들 사이에서 남북한의 완충 역할 (즉 이들 강대국들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그 범위를 한반도 안으로 한정하는 역할), 그리고 이 구역 범위에 있는 나라들이 보유한 막대한 핵무기, 남한의 경제력이 강대국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점 등 덕분일 뿐이다.

문학 작품이나 드라마, 영화, 만화는 주로 예민한 비주류들이 스토리를 쓴다. 수많은 작품들에서 탐욕스러운 재벌은 결국 많은 재산과 권력을 얻었지만 인간적인 행복을 놓쳐 불행해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며, 돈과 권력만 좇는 사람들은 마지막에 정신적으로 무너져내리는 모습으로 그려져  독자와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유발한다. 또는 그런 엄청난 자산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 보잘 것 없는 주인공의 인간적인 매력에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해피엔딩으로 결국 주인공이 그 돈과 권력을 이체 받을 가능성은 덤으로.) 그런 작품들의 교훈은 결국 '돈이 다가 아니고 권력은 허무하다' 이다. 이것이 과연 현실에 부합할까?

예민한 비주류들이 알아야 할 것은, 주류 사회의 구성원들이 뭔가 중대한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지 못해서 그렇게 사는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상의 주류는 돈과 권력만을 추구하고 그것만 계속해서 소유할 수 있다면 죽는 그 순간까지 행복하게 살다 갈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미 다수가 그렇다. 사람들이 뭔가를 잃어버려서 돈돈돈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돈만 많으면 행복할 사람들, 돈이 더 많을수록 행복한 사람이 세상의 다수를 차지한다. 오히려 주류로 태어난 다수는 그래서 비주류들보다 인생의 목표도 뚜렷하고 더욱 열정적으로 인생을 살 수 있으며 쓸데없는 고민과 생각에 시간을 탕진할 필요도 없다.

여기서 예민한 비주류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주류를 따라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아무리 이상하고 희한할 뿐 아니라 주류 사람들이 보기에 이해 안되는 것일지라도, 비주류들이 그렇게 태어난데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유전자에 새겨진 것일수도, 자라면서 우연히 뇌가 그런 쪽으로 발달한 것일지도 있고 또한 남들이 모르는 자신만의 특수성 때문일 수도 있다. 그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 해도, 그런 상처를 준 주류들이 주위에 가득하다고 해도, 굳이 자신의 가치관을 버리고 주류의 가치관을 답습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의미다. 그것은 반대로 주류로 태어난 사람들이 돈과 권력, 명예를 모두 버리고 갑자기 아프리카 난민을 위해 헌신하겠다거나 음악과 미술을 위해 남은 인생을 바치겠다는 것과 같다. 처음엔 멋있어 보일 수 있겠지만 그 지루함과 공허감을 절대로 견디지 못한다. 양쪽 모두에게 말이다.

예민한 비주류들이라고 현실을 외면할 필요도 없고, 외면해서도 안된다. 살아있기 위해, 무엇보다 인간 사회에서 비주류로서도 잘 살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현실과의 접점이 필요하다. 다만 그 현실과의 접점 속에서 주류들과 굳이 경쟁하거나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 이것은 한편으로 욕심을 내려놓는 것과 관련 있는데 더 중요한 것은 비주류들이 이런 욕심을 부렸다간 주류의 사람들이 비슷한 욕심을 부린 것보다 훨씬 더 탐욕스럽게 여겨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순수 미술과 순수 학문을 하는 사람들, 아프리카 등으로 봉사를 떠난 사람들이 갑자기 부동산에 집착하거나 정치인의 자리를 탐하는 것을 상상해 보자. 어울리지도 않겠지만 무엇보다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탐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주류의 사람들이 보기에 비주류 사람들은 현실 적응력과 세상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다. 그런 사람들이 직장에서 주류인 자신들의 자리를 탐하고 자신들과 경쟁을 벌이려고 달려드는 것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초등 저학년생이 성인 남성에게 진심으로 주먹질로 이기겠다고 덤벼들면 어떤 생각이 들까에 대한 답과 같다. 현실에 대한 접점은 반드시 남겨놓되, 즉 먹고 살기 위한 일은 반드시 하고 그 일이 자신과 맞든 안맞든 어느정도 경제적 문제 해결에 도움될 접점은 만들어두는 것이 필요하되, 그 속에서 더 큰 것을 바라는 것은 스스로의 정신을 갉아먹을 뿐이다. 같이 일하는 주류들이 자신을 공격하고 무시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진심으로 붙으면 상대가 되기 힘들 수 있다. 업무 능력이 더 우수해도, 더 높은 성과를 낸다 해도 마찬가지다. 왜 능력과 성과가 높은데도 그런 수모를 당할까? 그런 것 따위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도 주류의 능력이고, 업무 능력과 상관 없이 정치질만으로 위로 올라가는 것 역시 주류의 능력이다. 조직의 생존을 망치는 게 그런 사람들이다? 조직의 생존은 그 조직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시장이 결정한다. 해당 조직이 시장에서 퇴출될 때 과연 그게 조직 내부의 그와 같은 성과 보상제도의 문제인지 아니면 그냥 어차피 어떤 식으로든 망해야 할 조직인지 개인은 절대로 판단할 수 없다. 세상은 결국 살아남은 조직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뇌피셜로 설명되는 곳일 뿐이지, 그런 설명의 기원이 되는 분석조차 진실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다. 진실은 '누구도 모른다'.

결국 비주류들이 자신의 삶을 잘 꾸려나가는 방법은, 말 그대로 주류 세상에 대한 욕심과 분노, 이해를 버리고 그저 자신의 세계 속에서 비슷한 세계를 가진 사람들과 공동체를 구성해서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에 일본의 노벨상 수상을 두고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27명이나 되는 노벨 과학상을 배출했을 뿐 아니라 그 상당수가 일본에서 박사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을만 하다. 노벨상의 수상여부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노벨상 수상자가 많다는 것 자체가 상징하는 바는, 일본에는 자기만의 분야를 꾸준히 파고드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며, 이는 일본의 장인정신과 오타쿠 문화와도 연관된다.

일본엔 정말 희한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도 많고, 그에 따라 희한한 상품과 서비스도 즐비할 뿐 아니라 각각의 깊이도 그만큼 깊고 넓다. 라멘이나 스시만 하더라도 전국의 라멘과 스시 가게마다 전부 다른 고유한 레시피와 기술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고, 아키하바라에서 볼 수 있는 누가 보나 싶을 정도의 희한한 주제로 만들어진 만화와 애니메이션, 아이돌이 되기에 부족하지만 수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지하 아이돌, 수많은 분야의 오타쿠 문화가 만들어낸 각양각색의 문화 상품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이런 비주류 문화가 실은 일본 과학계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데, 기본적으로 기초과학은 남이 하지 않은 분야, 거들떠도 보지 않은 분야에 수십년 천착한 결과가 만들어지는 대표적인 분야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사무라이 문화와 평화를 중시하는 섬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독특한 일본만의 개인주의적 문화가 결국 일본의 이같은 탄탄한 비주류 문화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외적 성장으로 보면 우리도 일본에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경제 성장의 측면에선 일본을 앞서고 있다는 평가가 요즘 많다. 그깟 노벨상 없어도 우리의 기술력은 충분히 세계에 통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외적인 성장이 우리 사회의 수많은 비주류 가치들을 평가절하하게 만들었으며, 그로 인해 사회는 논의 주제의 다양성을 잃고 몇 안되는 주류 가치만이 모두가 추구해야 할 일률적인 가치로 취급되는 경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편으로 한국 사회가 꾸준히 경제 성장을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여기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바로 소수의 예민한 비주류들이 될텐데, 점점 더 비주류 가치에 대한 논의가 설 자리를 잃어가는 상황에선 특히 더 그렇다.

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의 주류가 바뀌기 위해선 역사적 흐름이나 세계 정세와 같은 굵직한 변화가 앞서 일어나야 하므로, 당장 현생을 살아야 하는 비주류들에게 그것은 그다지 현실적인 기대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다만 일본의 노벨 과학상 수상과 오타쿠 문화를 엮어서 생각해 보자면, 결국 예민한 비주류들에게도 얼마든지 자기 삶을 잘 살아나갈 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문화적 토양이 만들어지지 않아 그런 길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잘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맨날 마음 챙김, 명상이나 추구하고 위로나 공감만 해달라고 징징대 봐야 변하는 것은 없다. 주어진 현실은 결코 변하지 않으므로 현실을 비난하고 욕해봐야 자신의 마음만 다칠 뿐이다. 엄연히 현실은, 특히나 한국은 예민한 비주류들을 위한 시스템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으며, 이것은 그다지 비난 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조차 없다. 한국사회가 주류 가치만을 추구한 덕분에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이뤘을 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치안이 좋은 나라이자 그 어느 나라도 넘보지 못할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2024년 행복 리포트를 참조하면서 우리가 조사대상국 세계 147개국 중 행복 순위 58위인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큰 착각이다. 행복 리포트는 주관적으로 느끼는 행복감 뿐 아니라 경제, 의료, 삶의 선택성과 독립성, 안전함 등등 여러 요인들이 복합된 지표로 정확히 말하면 살기에 가성비 좋고 편리한 나라 순위를 측정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여기서 하루 중 긍정의 감정을 느끼는 등 주관적 행복을 측정한 지표가 있는데 이 순위에서 한국은 58위가 아니라 111위다. 또한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순위는 70위인데, 이것 역시 순위가 높을수록 부정적 감정을 더 많이 느끼는 것을 뜻한다. 일본은 각각 68위, 9위로 긍정적 감정은 그다지 좋은 성적이 아닌데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순위로는 세계 최상위에 속한다. 태국은 각각 12위, 36위이며 과테말라와 파나마는 긍정적 감정이 각각 세계 2위와 3위로 실은 북유럽 국가보다도 앞서 있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사람들이 실제 느끼는 행복 수준은 그냥 100위권 밖이라고 보면 되며, 왠만한 선진국이든 OECD 국가들이든 최하위라고 보면 된다. 결국 우리는 행복과 경제 성장, 즉 주류 가치를 바꾼 국가이며 이 시스템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전반적으로 행복해지기 시작하는 순간 코스피 지수를 비롯해 한국의 모든 주식은 처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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