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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중독, 그리고 명상

Written on 2025-11-30

내가 서 있는 이 곳, 지금의 현실에 발을 붙이지 못한 채 늘 어딘가 더 나은 곳이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고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내가 갖지 못한 무엇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만성 불안에 의한 만성 중독 상태일 수 있다. 불안은 중독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아직 그 메커니즘이 시원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불안은 보통 편도체가 과활성화된 상태로 볼 수 있는데, 쥐의 편도체 중심핵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탐닉의 대상을 주었을 때 쥐는 그 탐닉 대상에 중독된 것처럼 매우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아직까지 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불안이 무엇인가를 원하게 만드는 도파민 회로를 과활성화 시킬 수 있는 등 명확하진 않지만 불안이 중독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쉽게 불안해지는 성향과 쉽게 무엇인가에 중독되는 성향이 따로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 둘이 겹치는지, 이런 성향들이 예민한 성격 등 외부 충격이나 과한 자극에 쉽게 소진되는 개인의 특성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현대 과학이 밝혀낸 부분은 여기까지이며, 이와 관련된 연구들은 여러 논쟁 속에서 여전히 진행중에 있다. 아무리 미래에 과학이 더 발전한다 해도 과학은 결국 인간의 일부만을 밝혀낼 수 있을 뿐이며, 나머지는 인간의 역사 등 인문학적 통찰, 각자 자기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만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개인적으로 내가 이에 대해 오랫동안 탐구해온 이유는 자명했다. 나 자신이 갖고 있는 지병, 그리고 어쩌면 그 외에 타고난 다른 원인,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겪었던 알 수 없는 상처와 트라우마로 인해 평생을 불안 속에서 살았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더 이상 제대로 사는 느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불안 문제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수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이며, 자각을 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깨닫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겪는 문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동시에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외면한 채 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불안의 속성 자체가 해결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깊은 좌절에만 빠질 뿐 아무런 해결도 가능하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이 심한 경우 특정 대상 혹은 상상 속 걱정이나 존재하지 않는 허상에 대해 중독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중독 대상을 실제로 개운하게 즐기거나 누리지도 못하지만 그런 중독 대상에 몰두하는 것이 차라리 더 안정감을 유지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골치 아프게 자신의 불안을 들여다보기 보다는 무엇인가 끊임없이 중독 대상을 찾아 헤매는 것이 역설적으로 ’짧은 인생 가성비가 높은‘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는 경우도 많다.

이 문제를 탐구하면서 불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았다. 상담 심리사와 정신과 의사 등 전문가들 뿐 아니라 명상을 찾는 길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까지 다양했는데, 가장 극단적(?)인 케이스가 바로 절에서 명상을 지도하는 스님이셨다. 엄청난 불안에 시달렸던 과거 이야기를 모두에게 들려주며 결국 출가 후의 명상만이 그 모든 불안을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고 말한 그 분의 편안한 모습은 그 명상에 참석한 모두에게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찾아본 바에 의하면 여지껏 나온 수많은 불안 장애 환자 치료와 관련된 연구를 봐도, 약으로도 치유가 힘든 마지막 케이스에서 명상이 효과가 있었다는 연구가 꽤 있었다. 이 시점에서 나는 명상이라는 게 별개로 존재하는 어떤 수행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종교가 추구하는 의식들 역시 결국 명상 효과와 깊은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되었다. 명상에도 단계가 있는데 처음 명상에선 대개 호흡에 집중하도록 훈련을 한다. 그리고 모든 종교에서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 각자의 신을 떠올리며 모두가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기도를 올리는 행동이 바로 이 호흡 명상과 닮아 있다.

직접 명상을 주최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본 결과,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다. 예민하고 불안한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어떤 면에서 나와 비슷한 점을 지니고 있다는 그 느낌. 딱 한 사람이 예외였는데, 태국에서 본 근육질 서양인 명상 강사는..너무 건장하고 우람해 보여서 잘 모르겠다. 아무튼 대부분의 명상 강사는 명상을 하기 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는데, 그 안엔 꼭 자신이 얼마나 불안에 시달렸는지에 대한 에피소드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의 말투, 행동, 이야기하고 상황을 이끌어가는 방식 모두 익숙한 공통점을 갖고 있었는데 - 그것은 모두 예민한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모습들이었다. 손짓 발짓 표정 목소리 톤 등 뭔가 표현이 풍부하고 자꾸만 말이 길어지면서 자기 안의 무엇인가 응어리진 것들을 전부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가 슬금슬금 보이는 것도 비슷했다. 명상 방식에는 소리 명상, 책 명상, 움직임 명상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실은 명상이라는 말 앞에 접두어처럼 뭔가를 따로 붙인 것일 뿐 근본은 결국 같은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의 호흡에 집중하는 것.

명상 관련된 독서 모임도 참여해본 결과, 남모르게 매우 예민하고 불안한 성향의 사람들이 이런 명상 모임들에 자석처럼 끌린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나, 신기한 점은 많이들 자기가 그런 부류(?)가 아닌 척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위에 말한대로 불안이란 것이 대면할수록 더 불안해지기만 할 뿐 전혀 해결이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오랫동안 회피해온 탓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예민’ ‘불안’ 이란 단어는 ’까다로움‘ ’사회성 없음‘ ’같이 지내기 싫은‘ 이란 사람으로 대우받기 때문도 있지 않을까 싶다. 즉 이미 살면서 그러한 사회적 낙인들을 수없이 찍혀왔기 때문에 그것을 계속 숨기는 것이 습관이 되고, 그러다보니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무의식적으로 인정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닐까. 자기 스스로도 자기 편이 아니니 누구에게든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기가 힘들다. 그런데 개중에는 내가 먼저 나의 불안과 예민함에 대해 공개를 하니 빗장을 풀고 갑자기 원래 자신은 무척 예민한 사람이었고 젊은 시절 너무 불안했다고 고백(?)한 사람도 있었다.

만성 불안에서 비롯된 만성 중독 상태, 그 외 무기력이나 우울한 기분 등등은 개개인마다 서로 조금씩 다르고 복잡한 메커니즘을 통해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아직까지 모두가 동의하는 수준의 이론은 없는 것으로 보이고 여전히 연구 중에 있지만, 그래도 많은 동의를 받고 있는 이론들을 종합해서 조금이라도 현실 적용에 도움이 되는 내용들을 뽑아 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만성적인 불안은 살면서 여러가지 면에서 스트레스를 동반하게 되고, 이렇게 불안과 스트레스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받다보면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을 즐기지 못하게 된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자꾸 뭔가 원하는 것이 많이 생기는데, 그 원하는 것들을 얻으면 지금의 현실에서 탈출해 더 큰 행복, 더 많은 즐거움으로 가득한 유토피아 같은 것이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특정 지역 부동산이나 돈에 대한 사람들의 과도한 집착, 자리, 명성, 인기 등등에 대한 과도한 환상 역시 바로 그런 ‘이상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기대가 생긴 것 자체가 현재를 충분히 즐기고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대상을 얻지 못한 상태는 끊임없이 불편하고 불행하게 느껴지는 한편, 혹 그 대상을 모두 얻는 상황을 맞이한다 하더라도 기대했던 것만큼 즐기지 못할 수 있다. 여기엔 만성 불안에 의해 뇌가 더이상 현재 갖고 있는 것을 즐기지 못하는 만성 중독 상태에 빠진 것 뿐 아니라 기대하는 대상을 실제보다 더 과도하게 기대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이 숨어 있다. 이것은 우리 뇌에서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신경학적으로 불일치 상태에 놓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 머리로 원하는 것과 마음으로 원하는 것 사이도 불일치가 일어난, 한마디로 무엇을 원하고 즐기는 것과 관련된 신경 회로의 균형이 깨진 탓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이론들을 다룬 책과 연구들을 찾아봐도 아직까지 모두가 동의하는 명쾌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는데, 그것은 여전히 이에 대한 정교한 메커니즘이 속 시원하게 밝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 당연할 수 있겠지만 - 완전한 해결책이란 없다. 불안을 잘 느끼는 성향도 편도체의 크기 차이 등 유전적인 소인이 크다는 연구도 있고, 심지어 중독에 대해서 말하자면 중독되는 성향 즉 취약한 성향이 따로 존재한다는 연구도 있다. 코카인이나 헤로인 같은 강한 마약에도 중독되는 비율은 30% 정도에 불과하다는 보고도 있으며, 이는 전체 대표집단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그 비율은 훨씬 낮을 수 있다. 그냥 애초에 만성 불안과 만성 중독으로 이어지는 성향 자체도 타고나는 비율이 크다는 뜻이다. 분명 어린 시절의 경험과 환경도 영향을 크게 미치겠지만 그 영향 역시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부모탓(?)을 할 수도 없으며, 우연히 여러가지 삶을 편안하고 쾌적하게 만드는 것들을 살면서 많이 얻을 경우 분명 도움은 되겠지만 그동안 수많은 관련 환자들을 본 세계의 많은 정신과 의사들의 경험에 따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한다.

여기서부터가 나의 진짜 결론인데, 결국 이와 관련된 문제는 현 시점에서는 더 파봐야 나올 원인이나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정신과학이나 신경과학, 뇌과학, 심리학이 (실은 이들은 모두 그냥 비슷한 학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명쾌하게 밝혀낸 게 없다. 과하지 않다면 그냥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자기만의 중독 대상에 몰두하는 것이 심지어 누군가에겐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일 수도 있다. 종교나 정치에 몰입한다든가, 돈이나 남들의 인정에 집착하는 것, 자식의 성공에 대한 집착 등 만성 불안에서 비롯된 허한 마음을 채워줄 그 어떤 집착 대상을 갖고 사는 사람들도 사실은 더 나은 다른 길을 찾기 어려운 상황일 수 있다. 고민하는 그 순간에도 시간은 계속 가고 나이는 들고 현실에서 해내야 할 것들이 많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금욕주의를 주장했던 스토아 철학,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의무를 강조했던 여러 종교적 지침, 자극적이고 입에 좋은 음식을 피하라는 수많은 연구들, 생각을 비우고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는 주장, 그럴듯한 것을 찾기 보다 자기 몸과 마음이 편한 것을 찾으라는 누군가의 지혜, 쾌락 추구를 멈추고 소탈한 삶을 강조했던 현인들, 소식을 하고 늘 건강을 유지하며 잠을 푹 자는 것이 장수에 좋다는 연구,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부터 강조해왔던 명상…이 모든 것들은 결국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하루하루를 덜 불안하고 더 만족스럽게, 더 자신을 꽉 채우며 살아가기 위해 지키면 좋을 자잘한 방법론들이다. 그리고 취약한 사람일수록 이런 것들을 지키기가 어렵고, 그럴듯하고 강렬해 보이는 쾌락의 유혹에 하루 아침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세상을 등지고 출가한 종교인들은 바보가 아니며, 집안에만 두문불출하며 밖으로 나오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도 단순히 문제 덩어리라고 치부할 수 없다. 정도의 차이,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 실은 훨씬 많은 사람들이 만성 불안과 중독에 빠질 수 있으며, 특히 인생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고 지금처럼 정신없이 세상이 변하는 시기엔 더더욱 그렇다.

멀쩡한 사람들도 상황이 심각해지면 커다란 불안과 공포에 빠질 수 있으며, 이는 과거 세계대전 시절,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 이어온 수많은 전쟁들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집단적인 불안과 공포는 사회를 마비 시키고 사람들이 기묘한 주장과 교리에 빠지게 하며 가학적인 사이비 종교, 극단적인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집착하게 만든다. 크고 작은 수많은 조직과 더욱 크게는 정치인이나 국가 지도자들은 사람들의 이런 불안을 이용해왔다. 불안에 빠진 사람들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매우 위험하고 무서운 존재로 돌변할 수도 있다. 이것은 일상에서도 명확히 파악하기 어려울 뿐 자주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비록 사람들이 눈 앞에서 죽는 전쟁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지금 사회 역시 과도한 경쟁 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는 전쟁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으며, 취약한 사람들일수록 그에 대한 불안에 더욱 크게 빠질 수 있다. 어느 정도까지는 이와 관련된 메커니즘을 알고 이를 완화시키는 방안들도 숙지해 두면 좋다고 생각하지만, 어차피 해결책은 없기 때문에 과도하게 불안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 그냥 어느 선에서 생각을 멈추고 의식적으로 더이상 깊게 들어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인생은 생각보다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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