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단순하게 산다. 복잡하게 머리 굴리고 계산하지 않는다. 머리 속에 한 두가지 생각만 하고 사는 것 같다. 그래서 그 한 두가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에선 매우 서툴고, 때로 바보같아 보이기도 한다. 머리 속에 자신이 연구하는 대상에 대해서만 하루종일 집중하는 학자, 골똘히 집중해서 하루종일 뭔가를 만드는 장인, 하루 종일 운동만 하거나 자기 작품에만 집중하는 예술가 등이 여기에 속한다. 순수하다고 할수도 있지만, 시대 흐름에 발맞추지 못해 기회를 놓치거나 누군가에게 사기 당하기 딱 좋다는 평가를 들을 수도 있는 부류다. 그런데 아마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단순하게 한 두가지에만 집중해 사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나는 여기엔 여러가지 과학적, 경험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직감에 의한 것일 수도 있겠다.
인간이 되게 복잡한 존재라고 볼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단순한 존재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먹이 쪽으로 움직이고 싫어하는 자극을 피하는 아메바처럼, 달콤한 먹이나 쾌감을 주는 전기 자극을 좇고 따끔한 전기 자극을 피하는 실험실 쥐처럼, 인간 역시 뇌 속 보상회로의 쾌감에 매우 강력히 지배받는 존재다. 그것이 도파민 회로든, 엔돌핀이나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관련 회로든, 어쨌거나 사람은 보상회로의 강한 쾌감 보상이 나오는 방향으로 행동하고, 고통이나 쾌감 자극이 고갈되는 쪽의 행동은 최대한 피하려고 애쓴다. 물론 아메바와 쥐와 달리 우리는 먹고 자고 싸는 일 외에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복잡한 기계도 다루고 정교한 작업도 하고 정치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다양한 행동들을 할 때도 결국 보상회로의 쾌감 보상을 더 받는 쪽으로 최대한 움직이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느낌이 드는 쪽은 최대한 피한다는 점에선 결국 행동의 근원이 되는 메커니즘은 단순하다고 볼 수 있다.
행복에 대한 정의도 의외로 단순하게 생각해볼 수 있다. 보상회로를 구성하는 뇌세포들이 지속적으로 건강한 상태, 민감한 상태를 유지해서 자주 쾌감 보상을 충분히 느끼지만 중독되는 일 없이 금새 다시 원상태로 회복되는 것. 그리고 살면서 그렇게 자주 쾌감 보상을 느끼는 일이 많은 것.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 바로 도파민 보상회로다. 여러 보상회로 중 가장 큰 기대감을 갖게 만들고, 뭔가를 의욕적으로 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보상회로이기 때문이다. 성공을 위해 열심히 하루하루 노력하게 만드는 것도, 매력적인 이성과의 즐거운 데이트를 위해 온 힘을 다하게 만드는 것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오늘 하루 열심히 일하는 것도, 친구들과의 즐거운 여행을 계획하는 것도 전부 도파민 보상회로의 역할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즐거움, 더 발전된 미래, 더 큰 쾌감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만들어 끊임없이 노력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모두 도파민 보상회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그만큼 큰 쾌감 회로인만큼, 그만큼 쉽게 피로해지고 지칠 뿐 아니라 중독 상태, 즉 더이상 충분한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회로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왜 단순하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명상을 하는 것도, 무엇인가에 집중을 하는 것도 모두 도파민 보상회로를 지치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게 만드는 것과 관련이 깊다. 너무 큰 자극, 잡다한 것들에 대한 생각은 뇌를 지치게 만들고 여기엔 도파민 보상회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긴 시험이 끝난 후 해방감을 느낄 때처럼, 오랫동안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 커다란 성과물을 만들어 냈을 때처럼, 강렬한 쾌감은 오랜 시간의 힘든 노력의 과정 끝에 얻어질 때 제대로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노력의 과정동안 보상회로 속 뇌세포들이 충분히 쉬고 다시 쾌감을 느끼기 위한 준비 작업 및 총알(?)장전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쉽다.
500원이나 천 원짜리 돈 넣으면 바로 강한 자극을 느낄 수 있는 전자오락, 클릭 몇 번이나 손가락 움직임으로 쉽게 웃을 수 있는 재미있는 영상들, 돈만 내고 잠시만 기다리면 마음껏 맛볼 수 있는 자극적인 음식들은 도파민 보상 회로를 지치게 만든다. 지치는 것으로 끝나면 좋은데 뇌세포가 지쳤다는 말은 비유에 불과하고 사실상 가만히 있어도 괴롭고 기존의 자극으로 충분한 쾌감을 느낄 수 없는 상태에 빠진 것과 같다. 그러니 아무것도 안하면 불안해지니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 자꾸 다른 것에 신경을 쓴다. 오늘의 주식 시장, 세계 정세, 자극적인 뉴스, 남들의 일상생활, 저 먼 곳 어디선가 벌어지는 전쟁들, 유튜버나 연예인, 기업가가 뭘 했다는 소식들, 아이가 있으면 내 아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 아이가 공부를 더 잘하려면 더 훌륭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등..이 모든 것들에 대한 관심은 그런 것들이 실제로 내 인생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보상회로 속 뇌세포들이 지쳐서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계속 뭔가 자극을 받아야 다시 어떤 쾌감이든 받을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단순하게 사는 사람들,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좋아할까? 그 사람의 보상회로가 건강한 상태이며, 불안하지 않다는 증거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보상회로의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만족하고 나면 더 과한 무엇을 원하지 않는다. 이미 보상회로가 충만감을 느낄만큼 쾌감을 느꼈기에, 개운한 상태다. 따뜻한 온천물에 담그고 있다 나와서 시원한 우유 한 잔 때리면 세상 다 가진 것처럼 개운하기 때문에 더 이상 바라는 마음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그런 상태를 평소에도 유지하는 사람이라면, 무엇을 원하는지가 명확히 보이고, 자기 자신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한 두가지에 집중한다는 것은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스스로를 만족시킬 한 두가지에 집중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그것이 연구 대상이든, 예술 작품이든, 일상에서 얻는 몇가지 기쁨이든, 사랑의 대상이든 그 종류는 상관 없다. 그런 사람은 이미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마음이 단단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 때 단단하다는 표현 역시 도파민 보상회로가 늘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그것을 스스로 잘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
이쯤에서 의문이 생긴다. 단순하게 산다 해도, 어쨌든 평상시 늘 집중할 한 두가지는 있어야 한다는 사실. 그렇다면 그 한 두가지는 어떻게 찾으며, 대체 그게 무엇일까? 그리고 모두가 그런걸 찾아야 할까?
여기에 대해서는 철저히 나의 생각인데,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훨씬 도파민 보상회로 속 뇌세포들이 튼튼하고 건강하게 타고난 사람들은, 많은 것을 신경쓰고 살아도 좋고 수없이 다양한 쾌락들을 추구하며 살아도 괜찮다고 본다. 그런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조직을 이끌고, 나아가 단체와 기업, 국가를 이끄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민한 사람들, 즉 뇌세포가 쉽게 지치고 피로해지는 사람들은 바로 그 한 두가지를 찾아서 평소 집중 대상을 그것들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불교에서 수행에 집중하는 스님, 신에 집중하는 천주교의 사제와 기독교의 목사, 학문과 예술, 철학에 집중하는 사람들, 자기가 운영하는 가게나 기업에만 온 신경을 쓰는 사람, 가족의 안녕만을 생각하는 사람 모두 이런 방식으로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것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도 없고 실은 기울여서는 안되는데, 왜냐면 애초부터 다른 것들에 주의를 기울일 여력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상회로 속 뇌세포를 소진시키는 짓이니까. 우리는 이렇게 한 두가지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에 편안함을 느낀다. 아무리 어리석고 무능한 사람도 인생에서 단 한 두 가지는 잘 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한 두가지가 만약 가족이나 아이에 대한 케어, 자신이 만드는 작품, 자신이 믿고 관심 갖는 종교 단체라면, 인생에서 그 한 두 가지만 제대로 해낸 것으로도 이미 큰 것을 남겼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집중해야 할 그 한 두가지는, 실은 아무렇게나 내가 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로 보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만 하면 된다? 그 이전에, 계속해서 집중하게 만드는 무엇인가 매커니즘이 따로 있다고 본다. 그 매커니즘은 결국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강렬한 욕구와 욕망이다. 그 욕구와 욕망 역시 도파민 보상 회로, 그리고 결핍이나 불안의 감정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편도체의 과활성화, 그 외 명확히 지칭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생물학적 본성과 과거 기억들이 얽혀 만들어낸 그 어떤 덩어리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게 계속해서 기대감을 주어야 하고, 그만큼 발전 가능성과 변화 가능성이란 속성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내게 지속적으로 건강한 도파민 쾌감 - 장시간의 노력과 시간을 투입해서 얻는 강렬한 기쁨 - 을 주기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단순한 존재다. 강한 도파민 쾌감이 일으키는 기대감이 나오지 않는 것에는 단기적으로는 관심을 가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결국 시큰둥해진다. 전국의 수많은 모임들은 그것이 직장 모임이든 독서 모임이든 운동 모임이든 그 외 공부모임이든, 그 안에서 뭔가 강한 도파민 보상이 주기적으로 나와야 유지된다. 대개는 새로운 이성 파트너를 만날 것에 대한 기대감, 내 커리어나 능력을 확실히 올려 실질적인 성과를 내게 만드는 기대감, 더 많은 수입을 얻을 것에 대한 기대감 등등이 여기에 속한다.
학자라고 아무 것이나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자신이 관심을 갖고 충분한 연구 업적을 만들어 금전적이든 자리든 명예든 어떤 식의 보상이 주어질 것으로 기대되는 분야를 무의식적으로 선택한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내적인 쾌감을 주거나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깊이 각인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 어린시절의 결핍이나 행복했던 기억 등 - 과 관련된 주제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장사나 기업을 세우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아무 아이템이나 돈될만한 것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가 선택하는 아이템 어딘가에 그의 가장 깊숙한 내면의 강렬한 욕구가 연결되어 있다. 성인용품 아이템을 만드는 사람이 과연 돈 하나만 보고 그 제품들을 아이템으로 선정했을까? 깊은 수면을 위한 고기능성 침대를 연구 개발해서 파는 사람은 분명 수면과 관련해 남들보다 훨씬 큰 편안함과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한 두가지를 찾지 못한다. 그 이유는, 내 생각엔 살면서 경험한 억압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린시절 언젠가 자기 몸 속에서 솟아오르는 강렬한 욕구를 외부로 표현했다가, 혹은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행동을 했다가 크게 좌절되거나 공격받은 경험이 그 욕구를 수치스럽게 여기거나 비현실적인 것으로 여기게 만들어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정작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그 욕구를 외면하고 숨긴채, 자꾸 다른 곳에서 다른 욕구를 채우는 것으로 대체하는 식으로 인생에 타협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으로는 충족이 되지 않으니 이런저런 고민을 하기도 하고, 자극을 느낄 수 있는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갖다가 결국 인생은 원래 그런거다 라고 대충 합리화하다가 삶이 끝난다.
그 한 두가지를 찾지 못하는 이유 두번째는, 실은 직감적으로 그게 뭔지는 알고 있지만 그것이 현실 세계에서 삶을 지속시키는데 도움이 안된다고 여기기 때문일 가능성도 높다. 세상엔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아 보인다. 급격히 올라가는 자산 가치는 어떻게 따라잡지? 내 친구와 지인들은 벌써 저 멀리 앞서가는데 나는 뭐하고 있지?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는 건가? 내 아이는 잘하고 있는 거 맞나? 내가 이것저것 챙겨주지 않으면 내 아이 인생이 망하는 것 아닐까? 요즘 왜 이렇게 인간관계가 복잡하지? 내가 이 모든 관계들을 하나하나 챙기고 관리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닐까? 등등. 그런데 사실은 그런 것들에 내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 한들 조금이라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생각은 과연 맞는 생각일까? 방치하든 관여하든, 온 신경을 다 쓰든 아무 신경도 쓰지 않든 사실은 그냥 알아서 돌아가는, 내 손을 떠난 문제들인 것은 아닐까?
타임머신이 발명되지 않았거나 평행우주로 갈 기계가 없는 이상 이것은 인류 역사가 지속되는 내내 영원히 증명되지 않을 문제다. 즉, 세상 일이란 것이 내가 신경쓰지 않아도 알아서 굴러갈지, 내가 신경을 쓰거나 관여하면 나비효과 이론처럼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지 과거에도 그랬듯이 미래에도 영원히 증명하지 못할 문제라는 뜻이다. 그러니 그렇다 / 아니다 라고 믿는 것은 그냥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다만 그럼에도 특히 예민한 사람들은 신경 끄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고 싶은데, 그 이유는 위에 언급했듯, 보상회로 속 뇌세포의 체력(?)이 낮기 때문이다. 즉 내가 관여해서 혹 변화를 어느정도 줄 수 있다 해도, 체력이 부족하니 건강을 위해 포기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수험생이 하루 사이에 전과목을 공부하면 다음날 시험에서 모든 과목 중 단 한 문제도 제대로 못맞출 수 있지만, 단 한 과목만 공부하면 그래도 그 과목에 대한 문제들은 맞출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머진 포기해야지 뭐. 시간이 부족하고 머리가 한계가 있는데 어쩔 수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