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로 일할 때나 치과의사로 일할 때, 환자분들 중 가끔 '왜 아픈거냐' '병의 원인이 뭐냐' 같은 것을 여쭤보시는 분들이 계신다. 그 때마다 이러저러한 설명을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다가 돌이켜보니 결국 마지막에 쓰는 마법의 단어는 '염증'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감기 걸리면 기침이 나는 이유? 감염 때문에 염증 반응이 일어나니까요. 위나 장이 아픈 이유? 자극적인 음식이나 컨디션 난조 등으로 점막세포들에서 염증이 났으니까요. 부은 이유? 세균 감염으로 면역 반응이 발생해 염증이 났으니까요.
병원이나 약국에서 현재 앓고 있는 질환의 원인이나 아픈 이유, 그리고 약의 치료 효과 등등 대한 설명을 들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염증'이다. 허리나 다리가 아파서 정형외과에 가도 염증 때문이다, 감기에 걸려 코나 목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이비인후과에서도 염증이 생겼다, 치과에 가도 염증이 문제다, 눈이 뻑뻑해 안과에 가서도 염증, 상처 나거나 어디가 아파도 염증, 마치 거의 모든 질병의 원인을 염증 한 단어로 일축해버리는 느낌이 들 수 있다. 분명 사람이 앓을 수 있는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상처 등등을 지칭하는 진단명이 무척 많은 것으로 아는데, 왜 의료기관에서는 하나같이 염증이라는 단어로 퉁치고 있을까? 혹시 다들 정확한 진단명을 외우기 어려워서 대충 그냥 '염증'이란 단어 하나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 아닌지 의문을 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사실 거의 모든 질병이나 그 외의 상처로 인한 통증이나 불편감의 이유를 바로 이 < 염증 > 이란 단어로 통일시켜도 별다른 문제가 되진 않는다. 물론 질환이나 상처 별로, 몸의 부위 별로 염증이 발생하는 과정과 양상, 증상 발현과 몸에 미치는 영향은 모두 다를 수 있지만 크게 보면 결국 동일한 원리인 '염증'에서 비롯된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염증에 대해 이해하고 있으면 사실상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거의 대부분의 문제와 통증 등의 고통스러운 증상에 대한 원인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겠다.
우선 염증이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까? 염증은 한마디로 우리 몸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뜻이다. 우리는 세균 등의 미생물, 환경 오염 물질이나 유해한 독성 물질 등의 공격을 받을 수 있고, 넘어지거나 물리적 폭력을 당해 충격을 받거나 상처를 입을 수 있으며, 여러 이유로 몸의 어떤 부분에 혈액 공급이 일시적으로 차단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나 뼈 등에 문제가 생겨 파괴되어 이것이 몸에 유해한 자극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손상된 부위를 치유하기 위해 우리 몸이 일으키는 일련의 과정들을 '염증'(Inflammation)이라고 한다.
그럼 염증은 어떤 식으로 진행될까? 비유를 하자면, 이것은 폐쇄된 성 (우리 몸)을 지키고 성 안의 주민들 (생명체를 유지하기 위한 장기와 조직등) 을 구하기 위해 군대(면역 세포)를 고용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세균과 미생물, 독성 물질이 우리 몸에 성공적으로 쳐들어오면, 즉 침입자들이 성문을 열거나 성벽을 부수고 들어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침입자들이 나타난 곳으로 군대를 빠르게 이동 시키기 위해 길을 넓히고 재빨리 군대를 수많은 교통 수단에 태워서 보내야 한다. 마찬가지로 세균 등 감염이 시작된 곳으로 우리 몸을 지키는 군인들과 같은 면역 세포들을 빠르게 보내기 위해 혈관 투과성이 커지고 (즉 혈관에 진입하기 위한 통로가 넓어지고), 혈액량이 많아진다. 이 때문에 염증 부위가 보통 붉어지며 붓게 된다.
한편 침입 지점에 더 많은 군대가 필요할 경우엔 전령을 보내거나 무전기로 통신해서 더 많은 군인들을 불러야 한다. 침입 지점에 도착한 군인들은 본격적으로 싸우기 위해 장비 점검을 하고 공격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 마찬가지로 감염 지역, 즉 염증이 시작된 곳에서는 면역 세포들에 의해 사이토카인 등의 물질들이 분비되는데 이것은 더 많은 면역 세포들을 불러 모으고 그렇게 모인 면역 세포들을 공격할 준비를 갖춘 위협적인 면역 세포들로 변신 시킨다. 마지막으로 적이 침입했으니 성 안의 사람들도 일손을 멈추고 군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동원된다. 그래서 성주는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성 안의 자원과 인력 동원령을 내려 주민들의 평화로운 일상은 잠시 중단된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은 체온을 높여 면역 세포들이 더 잘 활동할 수 있는 한편 침입한 세균들은 적응하기 어렵게 만들고, 이로 인해 통증을 발생시켜 우리 몸이 하던 일을 멈추고 쉬도록 만든다. 싸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염증은 침입자들, 즉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쳐들어올 때만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들은 평생 그 자리를 지키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운 세포들이 만들어져서 오래된 세포들을 대체한다. 이 때 오래된 세포들은 쓸모가 없어져 폐기 처리를 해야 하는데, 이 때에도 면역 세포들이 일을 한다. 오래되고 낙후된 건물들을 허물거나 죽은 사람과 죽은 동물들의 장례를 치뤄줄 때 공병 부대를 동원하는 것과 같다. 또한 세포들 중엔 외부에서 유해 자극을 받거나 자연적인 이유로 유전 물질에 손상이 생기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 때 이런 세포들을 처리해주지 않으면 주변에 민폐를 끼치거나 심할 경우 암세포가 되기도 한다. 이런 세포들 역시 면역 세포들이 바로바로 처리해주어야 한다. 이는 경찰을 풀어 범죄자들을 잡아들이는 것과 같다. 그 외에 여러가지 일시적으로 혈액이 통하지 않는다든지, 물리적인 충격을 받았을 때 (붓거나 멍이 들 때 등) 조직이나 세포들 일부가 손상될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을 청소하는 역할 역시 면역 세포들이 한다. 홍수나 지진 등 갑작스런 재해가 났을때 군부대를 동원해 일처리를 맡기는 것과 같다. 이 모든 과정은 그 범위나 정도가 크든 작든 염증 반응을 통해 일어나게 된다.
이쯤에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 수 있다 : 그러면 염증은 좋은 것 아닌가? 그런데 왜 병원에 가서 왜 아픈거냐, 문제가 뭐냐 물으면 '염증 때문에 그렇다' 하면서 '염증을 줄여주는 약을 주겠다' 하지? 염증을 줄이면 오히려 우리 몸을 지키고 수선하고 회복하는 일을 못하게 막는 것 아닌가?
이런 의문은 어느 정도 타당한 면도 있긴 하다. 염증 반응 과정에 일어나는 다양한 면역 반응은 물론 당장 일어난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를 약으로 억제하는 것은 오히려 치유나 회복 과정을 늦출 수도 있다. 실제로 감기가 걸렸거나 가벼운 위장 질환, 그 외 심하지 않은 질병이나 타박상의 경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결국 낫는다. 프랑스 속담에 감기 걸렸을 때 병원을 가면 일주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7일만에 낫는다는 말이 있다.
다만 문제는 그 염증의 수준이 항상 적절히 조절되지는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러니까 이상적으로 모두가 건강해서 늘 적절한 만큼, 필요한 만큼만 염증과 면역 반응이 일어난다면 상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필요 이상의 염증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특히 최근 수십년간 식생활의 변화나 운동 부족, 스트레스 증가와 각종 성인병 발병률이 올라간 것과도 관련이 깊다. 물론 유전적인 부분도 관계가 있다. 이렇게 염증과 면역 반응 수준이 지나치게 올라가면, 이제 염증은 우리 몸에 해를 끼치기 시작한다.
위에서 언급한 성 내부 침입자를 쳐부수기 위한 군대 비유를 다시 가져와 보자. 쳐들어온 침입자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군인들을 불러 모았더니, 우선 이 군인들을 먹여살리는데 비용도 많이 드는 것도 문제지만, 개중에 할 일이 없어 노닥거리다 괜히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시비를 거는 군인들이 생겨난다. 실제로 대부분의 면역 세포들은 우리 몸을 공격하지 않지만, 염증이 심해서 너무 많은 면역 세포들이 모여들면 그 중 우리 몸을 공격하는 녀석들(?)이 생겨난다. 또한 면역 세포 뿐 아니라 우리 몸 속 세포들은 자체적으로 침입자들이나 유해물질들을 없애버리기 위해 활성 산소라는 독소를 만들어 침입자들을 공격하는데, 염증이 심해서 활성 산소들이 너무 많이 만들어지면 이것이 세포의 DNA나 세포 속 여러 기관들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게 된다. 적의 침입 구역에 모여든 군인들이 시민들에게도 무기를 쥐어 주면서 같이 싸우자고 해서 시민 의병들이 함께 싸우게 되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무기를 가진 시민들 중 일부가 딴 맘을 품고 서로를 해치기 시작한 것과 같은 상황이다.
코로나 팬데믹때, 안타깝게도 감염 환자들이 속수무책으로 사망하는 일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했다. 이 때 사망의 주요 원인으로 '사이토카인 폭풍' 이 지목되었다. 사이토카인은 앞서 언급했듯 면역 세포들을 불러모으고 염증을 더 크게 일으키는 인자를 뜻한다. 폭풍이란 말은 말 그대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느라 면역 세포들이 당황했는지 갑자기 엄청난 양의 사이토카인을 만들어 방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염증과 면역 반응이 갑자기 커지고 이로 인해 폐나 심장, 간 등이 공격을 받아 환자들이 사망에 이른 것이다. 이 때 코로나 증상을 완화하는 약들 중 면역 반응을 줄여주는 약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끔 얼굴과 몸 여기저기 피부나 입 안 등 세균 감염이 일어난 곳에 농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이 농은 알고보면 세균과 싸우고 장렬히 전사한 면역 세포들, 그리고 이같은 전쟁 속에서 피해를 당한 일반 세포들의 잔사들 등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쟁이 끝나고 난 후 전장에 남은 군인 시체들을 그대로 방치하면 썩으면서 괴로운 냄새를 풍기고 각종 들쥐와 전염병의 숙주가 될 수 있듯이, 농이 너무 많이 생길 경우 반드시 외과적 처치로 빼주어야 한다. 그대로 두면 농이 거꾸로 그 주위에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염증과 면역 반응이 필요하긴 하나 그 후에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마 병원이나 약국에선 이 경우에도 '염증을 빼주어야 한다' 라고 들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설명의 편의를 위한 익숙한 단어 선택이라 하겠다.
염증은 급성 염증과 만성 염증으로 나뉜다. 급성 염증은 염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발생한 지 몇 분에서 몇 일간 발생했다 끝나며, 앞에서 알아본 것은 급성 염증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그런데 급성 염증이 자주 발생할 경우 만성 염증이 시작되는 경우가 있다. 만성 염증은 많은 경우 그다지 좋은 염증이 아닌데, 그 이유는 뚜렷한 이유 없이 염증이 계속 되거나 그렇게 지속된 염증으로 인해 파괴된 조직들을 청소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염증이 발생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몸 여기저기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만성 염증은 수많은 성인병과 관련이 깊다. 요즘은 대부분의 성인들이라면 '동맥경화' '뇌졸중' '심근경색' 이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서 익숙할 것이다. 이같은 심혈관계 질환들 중 상당수가 혈관 내 만성 염증과 관련이 깊다. 혈액 내에 기름기가 많이 돌아다니거나 흡연, 음주 등 몸에 안좋은 것들을 많이 하다보면 가끔 혈관 어딘가에서 외부 충격 등등에 의해 염증이 발생하기 쉬운 상태가 된다. 이 때 혈관을 구성하는 세포들이 염증에 의해 상처를 입었다가 치유되는 과정에서 기름기와 여러 염증 부산물들과 한데 엉켜서 부푼 흉터를 지니게 된다. 이것이 점점 커지거나 많아지면 혈액의 이동을 막을 수 있는데 이것이 뇌혈관에서 발생하면 뇌졸중, 심장 근처 관상동맥이라는 혈관에서 발생하면 심근경색이 발생해서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술을 자주 마시거나 달달한 음식들을 자주 먹어 간을 피로하게 만들면 간세포도 힘들어서 염증이 자주 발생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지방간과 간염 등이 진행된다. 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신장과 췌장도 허덕이게 되어 당뇨와 신장질환 등등으로 이어진다.
최근엔 그동안 그저 '마음의 문제' '의지의 문제' 로만 여겨졌던 우울, 불안, 그 외 심각한 정신질환 모두 이같은 뇌세포 혹은 뇌세포 주변 면역세포들의 염증 발현 때문이라는 이론이 지지를 받고 있다. 한마디로 몸 여기저기 자주 아프고 염증이 발생하면 뇌에도 염증이 자주 발생하니 이로 인해 마음의 병이 들 수 있다는 말이다. 더이상 마음의 병을 그저 노력이나 마음가짐의 문제로 치부해선 안된다는 의미다. 몸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이 마음의 건강과 행복을 지켜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타고난 기질적 문제, 어린 시절과 인생을 살면서 경험했던 여러 문제들 역시 영향을 미치지만, 이런 영향마저도 염증을 매개로 일어난다는 증거들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누구 말대로 그저 건강한 식단 유지하고 운동 열심히 하고 잠만 푹 자면 인생에서 거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된다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닐 수 있다. 몸이든 뇌든 염증을 줄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활동이 바로 잠과 운동, 건강한 식사이기 때문이다.
투박한 생각일 수 있지만 내 몸 어딘가가 안좋거나 마음이 불편할 때, 스트레스나 불안이 커질 때 등등 불쾌한 느낌이 드는 상태라면 내 몸과 뇌에 염증이 발생했구나, 라고 생각하는 관점은 꽤 도움이 된다. 문제의 원인을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상황 - 사회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인한 괴로움 등등 - 에 돌리는 것보다 당장 그 불쾌함을 없앨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을 떠올리고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괴로운 건 몸에 염증이 있으니 이걸 완화 시키자' 라는 개념으로 가면 그냥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라든가 억지로라도 생각을 멈추고 러닝이나 헬스장, 요가 등등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최적의 해결책이라는 것을 떠올리기도 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