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잠을 잘 못잔 다음 날은 하루종일 의욕도 없고 무기력할 뿐 아니라 별것도 아닌 일에 화가 나는 일이 많아졌다. 어려서부터 항상 잠을 많이 자는게 문제지 잠을 잘 못자는게 문제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기에, 최근 스마트폰으로 인한 수면 문제를 호소하는 이야기를 다룬 기사를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수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떠오르는 사례들이 두 개 있다. 하나는 학교에 다니던 시절, 몇 일 내내 잠을 못 잔 동기 형의 모습이다. 당시 '병리학'이란 과목에서 악독하기로 유명한 교수가 이번 학기에 반드시 몇 명을 유급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과거 선례들이 많기 때문에 다들 불안 속에서 시험 공부를 준비했으나, 개중에 특히 심하게 불안해 했던 형이 있었으니, 이 형의 이름을 B형이라고 부르겠다. B형은 몸집도 있고 성격도 둥글둥글하고 무척 착해서 동생들이 좋아하던 형이었다. 그런데 B형은 그만큼 마음이 여렸고, 특히 병리학의 이 악독한 교수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이었다. 시험 당일, B형의 초췌하고 마치 어디 전쟁터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것처럼 덜덜 떠는 모습에 주변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물어보니 몇 일동안 잠을 못잤다고 한다...장기간 수면 부족이 피해의식을 불러 일으키고 환상과 강박 등 각종 정신적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우리는 눈 앞에서 목격했다. B형은 자신의 주위에 둘러선 사람들을 마치 자신을 잡으러 온 비밀경찰이라도 되는양 극도로 겁내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직후에 챙겨준 주변 동기들의 말에 따르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웠다고 한다.
또 하나 떠오르는 사람은 치과 환자 중에 있었다. 자신이 '특정 항생제 알레르기' 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동안 그 이야기를 듣기 전 발치와 임플란트 등 약을 먹는 외과적 수술을 많이 받았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헌데 어느 날 수술을 받고난 후 너무 고통스러워서 울면서 치과에 전화를 했고, 응급실로 뛰어 가서 실시간으로 데스크 실장님을 통해 나와 대화를 나누었다. 응급실에서도 별다른 문제를 찾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자신이 갖고 있었다는 '특정 항생제 알레르기'조차 없는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 날 진통제를 맞은 후 푹 잔 후에야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는데.
알고보니 수술 당일, 수술을 받고 밤새도록 일한 것이 화근이었다. 환자도 깨달은 것이, 과거 항생제 알레르기가 있다고 스스로 느꼈을 때도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서 알게된 것이 아니라, 그 날 어떤 치료를 받고 약을 먹은 후 밤새도록 일을 했던 것.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분의 경우 특히나 수면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몸을 타고난 거라 볼 수 있겠다.
수면에 대해서도 그동안 많은 연구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측정 기술의 한계로 아직도 수면에 대해서 밝혀내지 못한 것이 많지만, 그간의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수면은 그동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낮동안 활동하면서 뇌신경세포들과 그 주변 면역 세포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염증 산물과 세포 내부 쓰레기들이 마치 정기적으로 동네에 쓰레기 수거 차량이 찾아올 때처럼 잠자는 동안 싹 청소가 된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낮동안 수없이 많은 학습을 통해 머리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저장된 기억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장기 기억으로 넘어간다고 추측한 연구도 있다. 그 뿐 아니라 낮에 일할 면역 세포들을 재정비하고,다음날 아침부터 사용할 에너지를 비축하는 기능도 있으며 낮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처리하는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연구들도 많다. 수면은 대략 90분짜리 비렘수면 3단계 - 렘수면 한 세트가 여러번 반복되는데, 이 반복 회수를 통해 충분한 수면 시간이 7시간 정도로 계산한 연구들이 많다. 중요한 것은 충분한 '깊은 잠' 즉 비렘수면의 2,3단계와 렘수면 시간의 확보인데, 생체리듬이 깨지거나 커피를 마시는 경우, 야식을 먹거나 밤을 샐 경우 아무리 오래 자도 이런 필수 수면의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려워 진다.
최근 현대인들의 수면 문제로 떠오르는 부분이 바로 이 '수면의 질' 부분이다. 분명 7시간 넘게 잤는데 개운하지 않고 하루종일 피로하다든가, 부족한 잠을 낮잠으로 보충해도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이 모든 것이 결국 밤중에 충분히 질이 높은 수면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스트레스, 불안 등 개인마다 여러가지 원인들을 지적해볼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면의 질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해보자면, 개운하게 잠을 못잤을때 '신기할 정도로' 안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불안한 문제들이 나타나곤 했다. 잠을 못자서 실수를 해서일까? 그게 아니라 돌이켜보니 그냥 세상은 별로 변한게 없는데 그걸 '안좋게' '불안한 문제로' 해석하는 내 머리가 변한 것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잠을 제대로 못잔 날엔 누군가 나를 공격하곤 했는데 곰곰 생각해보면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깨닫게 된다. 잠을 개운하게 푹 잔 날엔 반대로 누가 시비를 걸어도 음 그럴 수 있어, 하고 내가 먼저 사과해도 마음이 편안하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명상과 불교쪽 스님들이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는 모습을 살펴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스님들이 갖게 된 편안한 마음의 과반 이상은 건강한 식단과 산 속에서의 일상 운동, 그리고 규칙적인 생활로 인한 깊은 수면 확보가 기여하고 있지 않나 싶다. 물론 이것은 천주교 기독교 등 다른 종교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모든 종교인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