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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되기 쉬운 상태

Written on 2025-12-10

게임에 꽂혀서 하루종일 게임만 하는 사람이나 자신의 연구에 대한 열정으로 하루종일 연구만 생각하는 학자, 좋아하는 취미에 온종일 몰두하는 사람, 자기 일에 미쳐 사는 사람이나 예술 활동에 푹 빠져 사는 사람들을 보고 '강렬하게 좋아하는 것이 있으니 행복한 상태'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간의 중독에 대한 연구들을 통해 추정해보면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특별히 뭐에 꽂히는 것 없이 하루하루 일상 속에서 주어진 일들을 충실히 하는 사람들이 더 행복감이 클 수 있으며, 뭔가에 꽂혀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자주 공허와 허무를 느낀 채 계속해서 추구할 대상을 찾아 헤매는 상태일 수 있다.

이것은 '도파민'에 대한 오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오래전 동물 실험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는 행위에 몰두하는 쥐를 보고 도파민 = 강렬한 쾌락이라고 추측했기 때문인데, 그동안 새롭게 밝혀진 바로는 도파민은 쾌락과 상관없이 수많은 상황에서 분비되는 범용 호르몬이며, 특히 학습과 무엇을 원하게 만드는 것과 관련이 깊다고 한다. 물론 무엇을 강렬하게 원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것 자체도 하나의 즐거움이자 행복이기 때문에 도파민이 쾌락이나 행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게임을 할 때 승부가 나기 전까지 달려갈 때나 여행을 앞두고 기대감을 갖는 것, 일의 최종 결과를 기대하며 마음 졸이며 성취를 향해 달려가는 그 과정 역시 쾌락이나 행복과 같은 정신적 보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도파민에 의해 무엇인가에 꽂혀 강렬히 원하게 되는 것과 막상 그 대상을 누릴때 만족을 하는 것, 즉 '좋아하고 만족하는 감정'은 다른 종류의 것이며 뇌에서 일어나는 부위도 다르다고 한다. 도파민 회로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아직까지 만족, 안정감, 충만감을 일으키는 것은 뇌 전체에서 통합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 명확하게 기전이 알려진 것은 아니다. 뭔가를 강하게 기대했지만 막상 그것을 손에 넣거나 누려보니, 혹은 성취해 보니 오히려 허전함만 밀려오거나 별 것 아니라고 느껴져서 내가 뭘 위해 이걸 위해 그동안 달렸지 하고 느낀다면, 그것은 도파민에 의한 '원함'만 가득했지 막상 실제로 '좋아하거나 만족'은 못한 것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신경과학에서는 '원하는 수준' 과 '좋아하고 만족하는 수준'이 비슷한 상태를 건강한 행복으로 본다. 한마디로 공짜 좋아해서 좋을 것 없다는 뜻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는 그래서 노력한 만큼 딱 그 수준만 보상을 얻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것은 결과에 크게 기대하지 말고 과정을 즐기라는 말과 일맥 상통한다. 이는 외적 보상보다 내적 보상에 집중하라는 말과도 같다. 내적 보상은 내가 나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보상이기 때문에 나의 노력대비 스스로의 성취감과 만족감이 일치하며 따라서 원함과 좋아함이 일치하는 건강한 만족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알고보면 과거 인류 조상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말들이 모두 뇌의 근본적인 원리를 파악하고 있었던 셈이다.

기대한 것 이상의 보상이 주어지면 도파민이 폭발적으로 터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예상 못한 큰 수익을 얻거나 복권, 도박으로 예상치 못한 대박을 치는 상황과 같다. 바로 이 때 중독이 일어날 수 있다. 이 순간 중독이 일어나는 것은 신경학적으로 마약에 중독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둘 다 급격한 도파민 증폭에 의해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마약의 경우 외부 물질이 주입되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도박이나 재테크 대박보다 더 심각한 중독으로 이행된다. 중독은 한마디로 '원하는 것'이 '좋아하거나 만족감을 느끼는 정도' 보다 과도하게 커진 것을 뜻한다. 한마디로 '강렬하게 꽂히는 것'을 뜻한다. 꽂혀서 달려갔지만 그 대상을 손에 넣으면 생각처럼 만족감이 크지 않아 결국 공허와 허무감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무엇인가에 강렬하게 꽂힌 상태는, 그 꽂힌 정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사실은 덜 행복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분명 꽂혀서 모든 것을 뒤로 미루고 거기에만 초점을 맞추지만, 끝끝내 그 대상으로부터 기대한 만큼의 즐거움과 만족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럼 어쨌든 기대한 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만족감은 느끼니 된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글쎄, 문제는 인간의 뇌가 기계가 아니라 그렇게 산술적으로 따지기 어렵다는 데에 있다. 한마디로 중독 상태, 무엇인가에 꽂힌 상태에서는 그 꽂힌 대상이 없으면 아무렇지 않은 평온한 상태가 아니라 괴롭고 지루한 상태가 되며, 중독 대상을 누리고 맛본다고 한들 애초에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나 만족감을 온전히 느낄 수 없으며 단지 그저 정상 상태로 돌아오는 것 정도만 가능할 뿐이다. 마약 중독자는 마약이 강한 쾌락을 주기 때문에 마약을 하는게 아니라, 괴로운 상태를 잊기 위해서 마약을 할 뿐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 어떤 것에 꽂힌 이유가, 그 자체가 만족스럽고 즐겁기 때문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전혀 즐겁지 않지만 어떤 계기로 뭔가에 꽂히면 계속 그것에만 집착하게 될 수 있다. 만성 불안 상태, 스트레스가 지속되는 상태에서는 심지어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대상에 대해서도 도파민이 향해서 그것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고 집착하게 될 수도 있다. 가끔 범죄 영화나 드라마에 보면 주인공 형사가 해결하지 못한 사건에 자꾸 미련이 남아 주위에서 하지 말라고 해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가 시간도 써가며 집착하는 경우가 있는데, 작가의 통찰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라 하겠다. 그 형사는 그 미해결 사건을 해결한다 해도 결코 만족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공허와 쓸쓸함만 남을 뿐이다. 공허한 이유는 피해자가 살아 돌아오지 않아서라는 감성적인 이유가 아니라, 그저 도파민이 향할 대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길가다 누가 째려보거나 직장에서, 가게에서 누가 나를 해꼬지 했다고 그게 계속 마음에 남아 있다든가, 어떤 문제가 터져서 하루종일 그 문제에 집착하게 되는 상태 역시 도파민 회로 과다 활성화에 의한 중독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정리하면 결국 무엇인가에 꽂혀 그것만 원하는 상태와 어떤 문제에 강하게 꽂혀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고 느끼는 상태 모두 신경학적으로 중독 상태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렇게 중독에 빠지기 쉬운 성향의 사람들이 따로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뇌신경세포가 남들보다 예민하거나 취약한 기질을 갖고 있지 않나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강렬한 마약 조차도 일부만이 중독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중독' 상태는 결코 행복하거나 만족스러운 상태라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누려야 할 인생의 즐거움과 행복을 지속적으로 놓치는 상태에 불과하다.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 놓아야 한다' 라는 동양의 지혜는, 한마디로 중독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며 특히 중독에 취약한 상태라면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다만 기질적으로 타고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남보다 무엇인가에 더 쉽게 꽂히는 성향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그런 성향은 때로 어떤 문제를 돌파해서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고 성취를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오랫동안 집착적으로 노력하고 들이파서 결국 성과를 낸 후에 느끼는 쾌감 역시 실재하는 행복과 즐거우미다. 그저 핵심은 '균형감', 즉 원하는 것과 만족감 사이의 간극이 크게 벌어지지 않도록, 중독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라 하겠다.

내가 어떤 상황에 있든, 무엇을 반드시 추구하며 살아야만 내가 온전한 나로 살 수 있고 그렇지 못한다면 인생이 망한 거라는 생각,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서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결코 인생에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면, 그것은 일차적으로 그 대상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마음 상태가 중독 상태에 빠진 것일 수 있다. 나 역시 만성 불안에 시달리며 살면서 그런 중독 상태에 빠져 사느라 인생을 온전히 즐기고 누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이 인생'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 따위는 없다' '뭐든 최선을 다하되 아무 성과 없어도 아님 말고의 마음으로' 라는 마음 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게 바로 뇌의 측면에서 건강한 상태이기도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실제로 인생이란 게 그렇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반드시 이뤄야 할 것, 가져야 할 것, 해야만 하는 것이란 없고 살면서 마주치는 문제들은 계속 해결해도 어차피 끊임없이 생겨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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