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결국 '그것이 무엇인가?' 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태여야 그것이 무엇인지가 보이는가?' 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좀 더 쉽게 설명해 보겠다.
학창시절 시험 기간만 되면 이상하게 게임, 만화, 드라마, 영화가 너무 재미있게 느껴지는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스트레스와 불안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탈출구, 즉 중독 대상을 찾는 것과 같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시험 기간에 갑자기 게임 제작자, 소설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품기도 한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시험이 끝나고 나면 그런 열정이 모두 사라지고 만다. 즉 시험 기간은 만성 불안이 지속되는 상황이라 그런 감정에서 탈출시켜줄 대상에 너무 과하게 신경이 쏠려 있기 때문에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가 무엇을 진심으로 원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여력이 남아있지 않다. 만약 시험이 끝난 후, 더이상 걱정할 게 없는 상태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게임, 드라마가 좋고 게임 제작자,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그건 어느정도 의미가 있는 깨달음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남녀가 함께 공포의 감정 속에서 불안한 상황을 헤쳐나가는 곳에 함께 있으면 사랑에 빠지기 쉽고 전쟁 중에 포로들이 자신을 지배하는 적군에게 친근감을 보이거나 범죄자들에게 잡힌 인질들이 범죄자에게 연민을 갖게 되는 것 모두 스트레스와 불안이 지속되는 상황에선 정상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다는 점을 나타낸다. 그런데 여기서 '정상'상태가 무엇인지를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불안한 상황에서 남녀가 서로에게 느끼는 애정은 가짜 감정이 아니며, 전쟁 포로가 적군에게 느끼는 친근감이나 인질이 범죄자에게 느끼는 연민 역시 가짜 감정은 아니다. 다만 긴 인생이란 시간의 관점에서 그런 순간들, 그 때 느끼는 감정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평생을 불안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경우, 평생 전쟁 포로로 살아야 하거나 평생 범죄자에게 인질로 잡혀 살아야 하는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대개 그런 순간은 짧게 끝날 뿐 아니라 반드시 벗어나야 할 상황으로 간주한다. '정상적인 상황' 이라는 것은 결국 그런 불안에서 빠져나와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불안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평온한 마음 상태로 누리기를 바라며, 신경과학의 관점에서도 그렇게 마음이 안정된 상태여야 온전한 행복과 만족감을 누릴 수 있다고 해석한다.
결국 누구에게나 제대로 인생을 누리며 살기 위해 반드시 선결되어야 할 조건이 바로 이 '불안-중독' 사이클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전쟁 포로의 상태, 범죄자에게 인질로 잡힌 상황, 시험 기간인 것처럼 만성적으로 늘 불안하고 초조한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는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절대로 찾을 수 없다. 대개 그런 상황에서 찾는 것들은 탈출구, 즉 불안을 잊을만한 값싼 쾌감이나 즐거움을 안겨줄 중독 대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불안-중독 상태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무리 고민해 봐야 답이 나올리 만무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답을 아무리 궁리해도 찾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는 어떤 답이 아니라, 자기 확신에 불과하다. 어차피 답이 있다면 그저 생물학적 관점에서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자손 및 나의 유전자와 비슷한 유전자를 최대한 널리 퍼뜨려 번영 시키는 것'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사람 인식의 관점에서 그런 무의식적 본능을 추구하는 것이 의식적인 행동의 측면에서 어떻게 떠오르는가가 중요하며, 이것 역시 정해진 답이 있을리 만무하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 수명 이상을 살며 과거와 비교해서 너무나 다양한 환경 속에서 각자 복잡다단한 인생을 살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식 역시 개개인마다 무척 다를 뿐 아니라 한 사람에서도 시기마다 나이마다 상황마다 끊임없이 달라질 수 있다. 즉 '이렇게 살아야겠다' 는 확신을 가질만한 내용을 갖게 되어도, 그 내용 역시 내가 나이 들고 내 상황이 바뀔 때마다 끊임없이 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서 핵심은 '어떻게' 가 아니라 '자기 확신' 이며, 그런 자기 확신 역시 내 마음이 불안-중독 사이클에서 벗어나 평온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가질 수 있다. '어떻게'의 내용만을 집중적으로 들이파고 집착해도 결코 그 답을 발견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쩌면 '어떻게' 의 내용조차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냥 어떻게 살기로 마음 먹고 거기에 확신을 가진다면, 그 내용이 무엇이든 그걸로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확신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흔들림 없이 그 길을 가고 있는 상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리하면 '내가 무엇을 진심으로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를 계속 고민해도 답이 안나오는 상태라면, 그것은 지금 답해야 할 질문이 아니라는 뜻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불안-중독 사이클에 빠져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고, 따라서 어떻게 하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지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