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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스타벅스 사태 - 극우들은 왜?

결국 각자의 타고난 생존 전략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무려 '스타벅스'라는 국민 커피 브랜드 회사에서 일어났다. 5.18 을 '탱크 데이' 라고 부르며 당시 독재 권력에 목숨을 잃은 고인들을 능욕했을 뿐 아니라 1987년 민주화의 주역 중 한 명이었던 박종철 열사를 '책상에 탁' 이라는 문구로 모욕한 것.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마케팅이었을까? 그런 마케팅을 기획한 사람은 회사 입장에서도 아무런 이득도 없는 이런 마케팅을 왜 굳이 리스크를 걸어가며 시도했을까? 그런데 이번 현상은 단순히 선거철이라 그렇다든가 하는 그런 표면적인 이유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좀 더 깊게 들어가면 결국 인간의 다양성, 그리고 각자 다르게 태어난 사람들의 생존 전략, 그리고 시대 변화에 부적응한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연결된다.

과거 인간의 진화 과정과 이동을 추적하는 고인류학과 지리학자들은 우리 인류종인 호모 사피엔스가 비슷한 시기에 존재했던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호모 에렉투스 등 다양한 영장류 종을 흡수하거나 제거하면서 단일 종족으로 우뚝 선 과정에 주목한다. 자료의 부족으로 아직까지 완전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종족과 만나 흡수를 하는 과정에서 해당 종족이 완전히 멸종하게 되었다는 데엔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없다는, 다른 종족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본성을 원시 시대부터 유지해왔다는 것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 세계의 수많은 지역에서 자신과 다른 가치관이나 종교, 생존 전략을 가진 부족, 민족, 국가를 제거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의 근거가 된다. 그런 전쟁은 심지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전이나 미국-이란전 등 현대전을 단순히 경제적 원인으로만 해석하기 힘든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나와 다른 상대방에 대한 알 수 없는 공포,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 모두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소규모 조직이든, 민족이든, 국가든, 결국 살아남은 존재가 답이다. 지구 위 모든 생물들의 생존 전략은 호모 사피엔스의 그것이 정답이고, 역사적으로 수많은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어왔을 뿐 아니라 생존 여건도 그리 좋지 않은 한반도에서는 현실주의, 실속주의적 가치관이 정답이 되었다. 개척자들이 만든 미국은 여전히 끊임없이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나가는 정신이 정답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고립된 섬나라에서 평화를 유지하며 생존에 성공한 영국과 일본은 온고이지신과 같은 특유의 보수주의가 정답이 되었다. 물론 향후 이들 나라들의 생존 전략이 바뀌어 다른 가치관과 주의를 가진 사람들이 살아남는다면, 정답은 또 바뀔 것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속에서 부적응하게 된 사람들이 계속 나타나고, 서로 다른 생존 전략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지속된다는 사실이다.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기후나 환경도 계속 변하며 사람들도 과거와 다른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새롭게 태어나 사회를 구성하게 된다. 당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은 끊임없이 변할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현 시대의 '정답' 에 가까운 사람들은 이득을 보지만 그 정답에서 먼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스트레스와 퇴출 압박을 받는다. 이는 처음부터 타고난 유전자와 후성유전학적 요인에 의한 현상일 수도 있고, 개인의 관점에서 볼 때 젊은 시절의 전략이 나이 들어서 그 효력을 잃은데서 오는 문제일 수도 있다.

크게 보면 진화적 부적응일수도 있지만, 좁게 보면 그저 단기간 동안에만 발생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런 스트레스와 압력을 받으면, 현 시대와 맞지 않는 가치관과 생존 전략을 타고난 사람들은 자기 존재에 대한 위협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기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인정받기 위해, 혹은 비슷하게 고통받는 사람들과 연대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진다. 스타벅스 마케팅을 기획한 사람도 비슷한 견지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세상의 시대 흐름이 자신의 생존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기에, 그에 대한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늘 느끼기에, 무리를 해서라도 자신을 표현해서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비슷한 사람들' 을 불러 모으려고 한 셈이다.

한마디로 '나 여기 있소' '나의 동지들, 잘 살고 있는감?' '우리 같이 이 뭐같은 세상 우리에게 맞게 바꿔보자' 라고 소극적으로 주장한 행위가 바로 이번 스타벅스 사태의 본질이다. 당연히 스타벅스 본사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브랜드의 이미지를 시대 변화에 부적응을 겪고 있는 소수 극우가 자기 생존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훼손했기 때문이다. 과거 수많은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였던 독재자를 찬양하고, 나라를 팔아 넘긴 사람들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은 것은, 그만큼 그 시절 그 상황 속에서 남들보다 더 잘나갈 수 있었던 사람들이 달라진 지금의 시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독재 체제하에서 독재자에게 굴복하면서 얻게 된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더 강한 국가들에게 협조하면서 나라를 팔아넘기고 그렇게 얻은 힘으로 자기 나라 사람들을 지배하면서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자손들의 번영을 이루어낸 사람들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해 왔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마냥 욕할 수는 없다. 엄연히 이런 사람들 역시 인류의 다양성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고, 인류 공동체의 장기적인 생존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반드시 일정 비율 이상 있어야 할 사람들이다.

힘의 논리에 의해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이들은 오히려 현실적으로 국가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일정부분 기여한다. 과거 조선 후기 때 일본이 조선을 점령하거나 2차대전 당시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한 것은 현실적인 힘의 격차라는 관점에서 어떤 식으로든 막을 수 없었다. 친일파가 있든 없든, 비시 프랑스를 구성했던 친독파 프랑스인들이 없었더라도 일본은 조선을, 나치는 프랑스를 점령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때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점령을 반대한다면 어땠을까? 끝내 나라를 지켜냈을거라 생각하기 쉬우나, 오히려 조선과 프랑스의 모든 사람들을 멸종 수준으로 제거 작업을 수행했을지도 모른다. 마치 과거 호모 사피엔스에 의해 다른 영장류 종족이 모두 사라진 것처럼.

한마디로 친일파, 친독파들처럼 자기 나라를 팔아먹고 부와 권세를 누린 사람들은 민족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얄미운 사람들이지만, 전체 국가 공동체 입장에선 오히려 생존 시한을 늘려준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모두가 끝까지 저항해서 역사 속에서 아예 사라진 국가들로 카르타고, 스파르타 등등을 들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까지 모두가 한마음으로 저항했던 그들의 정신은 지금까지도 숭고한 정신으로 남았지만, 현실적으로는 오히려 국가 전체가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강자에 굴하고 약자에 강한 기회주의자, 자기 민족을 팔아먹으면서까지 부와 권력을 독식하고 싶어하는 극우주의자들을 포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의 행위는 분명 과거 수많은 사람들이 어처구니 없이 목숨을 잃게 만들었다. 일본 극우들은 심지어 수많은 자국민들의 목숨을 소모품으로 쓰고 버리기까지 했다. 요지는, 지금 볼 때 이해 안가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는 것은 분명 과거에 그들이 어떤 쓸모가 있었고, 그래서 아무리 얄밉고 미워도 그 존재의 근거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좋든 싫든 인류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유지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현 시대에 부적응을 보이거나 수많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짓을 하는 사람들의 존재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 말은 식민지 시절 침략국에 동조했던 사람들, 독재 권력에 굴복했던 사람들이 국가를 살린 일등 공신이었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어느 나라나 침략국 혹은 독재 권력에 복종하거나 끝까지 저항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의 갈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역설적으로 언젠가 기회가 생기면 식민 국가가 성공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에너지가 응축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갈등이 있다는 것은 상황이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 갈등의 방향 역시 그에 맞게 폭발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나라나 여러 가치관과 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적 정당들이 있는데, 이들 정당들이 늘 갈등 관계에 있어야 국제 정세의 변화와 경제 환경 변화에 따라 어느 쪽이든 폭발적으로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다시 말해 침략국의 지배 하에 국가 공동체를 장기적으로 살리기 위해선 침략국에 동조하는 세력과 저항하는 세력 양쪽 모두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이것은 다양성의 중요성을 의미함과 동시에, 한편으로 그러면 무턱대고 다양성이 중요하니 나와 다른 생각, 이 사회의 상식과 어긋나는 생각이나 행위들에 대해서도 관용을 해야 하는가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현 시대의 수많은 살인자들, 연쇄 살인마들, 인간의 생명을 도구처럼 생각하는 싸이코패스들은 뇌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졌을 거란 가설이 힘을 얻고 있다. 증명하긴 어렵지만 아마도 이들은 과거 살육전이 벌어지는 전쟁터에서 그 누구보다 더 용감하게 적진으로 돌진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잖아도 사람을 죽이고 싶어 근질근질하던 차에, 모두가 두려워 감히 한 발 앞서 나가지 못했던 넓은 전장에서 이들은 가장 먼저 튀어나가 승기의 흐름을 주도했을지 모른다. 그런 조상들 덕분에 현 시대에 남은 이들을 그러면 다양성을 이유로 감옥에서 모두 해방시켜야 할까?

여기서 착각하기 쉬운 부분이 있다. 애초에 그 누구도 인류 전체의 생존, 내가 속한 국가의 생존을 목표로 살 이유는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여러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늘 함께 있어야 전체 공동체의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냥, 학문적 이론적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 뿐이다. 보수당과 진보당이 서로 갈등 없이 비슷한 의견으로 동의하고 두루뭉술하게 가면, 급변하는 국내외 상황에 맞게 빠르게 발맞추지 못하고 그냥 비슷하게 이도저도 아닌 선택들만 하게 된다. 공동체의 존속은 그냥 결과일 뿐이고, 개개인들은 모두 각자 타고난 모습 그대로 자신을 표현하고 자기 의지를 관철하며 사는 것이 최선이다.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살인자는 당연히 나의 안전을 위해 감옥에 가두는 데 찬성해야 하고, 나의 상식에 맞지 않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나의 감정을 위해 불쾌감을 표시하거나 그들을 제재하기 위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 그게 결국 나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도, 국가든 인류든 전체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도 최선이다.

오히려 나와 다른 사람들 중 나의 생각을 비난하고 나에게 위협을 가하는 사람들, 나와 생존 전략이 다른 사람들에게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거나 때로 선제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나 자신에 대한 직무유기이자 이 사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도 직무유기다. 다른 사람도 타고난 모습 그대로 살고 타고난 가치관을 수호하며 살도록 존중하되, 나 역시 나의 감정, 내 가치관, 그 외 내가 타고난 모든 것을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는 극우들이 싫다. 독재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싫고,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을 모욕하는 극우들을 정말 싫어한다. 강자에 붙고 약자를 밟는 것이 최선의 생존 전략이라고 믿는 그들이 싫다. 그러나 설득할 생각은 전혀 없고, 만약 내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내게 피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공격을 하거나 피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존재가 무가치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인류 역사가 지속되는동안 그들은 늘 일정 비율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다. 미래에 유전체 통계학이 더 발전하면 이같은 가설도 더더욱 확실하게 증명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만약 내게 직접적으로 불쾌감을 준다면 나 역시 어떤 식으로든 불쾌감을 표시할 것이고,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국가가 위기에 처해 어수선한 상황에서 그들과 생존 경쟁을 해야 한다면 나는 과감히 그들을 죽이는데 앞장설 것 같다. 극우들의 사고 방식과 생존 전략이 개인의 입장에서 더 큰 부와 자원을 얻는데 최적화된 결과를 가져올지라도 나는 그런 방식을 따르지 않을텐데, 그 이유는 그냥 내가 그렇게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 나는 나대로 사는 법은 알지만, 극우를 옹호하는 사람들처럼 사는 법은 전혀 모른다. 법망을 피할 수 있다면 그들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믿지만, 현재의 법적 시스템 상에서 굳이 그런 행위를 할 이유는 없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