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여성이 성인이 되어 비슷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를 만난다는 설정은, 심리학에서 오랫동안 다루어온 역설이자 수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에서 차용한 클리셰이다. 오늘날에는 이처럼 극단적인 케이스가 드물겠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정신적 폭력을 가하는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곤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정신적 폭력이란 보통 남과 비교하며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지적해 스트레스를 주거나, 나의 부족한 점을 은근히 끄집어내어 비하하고 무시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는 직장이나 사회처럼 서로 경쟁하는 적대적인 관계에서는 오히려 드물게 일어난다. 오히려 오랫동안 가깝게 알고 지냈던 친구나 마음이 맞았다고 생각했던 지인, 심지어 가족이나 친척에게서 주로 이러한 피해를 입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관계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대개 그 뿌리는 부모로부터 자신의 욕구와 감정, 취향과 거부감을 인정받지 못했던 과거의 경험, 그리고 그런 양육 환경에 취약하게 반응하는 유전적·기질적 특성에 있다. 생존을 위한 모든 권력을 쥐고 있던 부모에게 인정받고 보호받지 못한 채 자란 이들은 실존적인 외로움에 시달리기 쉽다. 이 외로움은 다른 사람과 어울린다고 해서, 심지어 연인이나 배우자가 있다고 해서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타고난 자신의 몸과 마음이 스스로의 생존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근원적인 불안에서 피어오르는 외로움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홀로 설 수 없고 누군가에게 의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무의식적 공포의 발로이다.
이 경우 의존의 대상은 과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무시했던 부모와 닮은 사람들이다. 대개 그런 이들 중에서도 사회적으로 성공했거나 주변의 인기를 얻는 소위 '인싸'들에게 특히 의존하게 된다. 그들이 세상의 '정답'처럼 보이고, 한편으로 사회적 성공과 인정까지 받는 모습을 보면, 결국 나의 진짜 모습은 정답이 아닌 '오답'이라는 왜곡된 인지가 강화된다.
부모를 비롯한 가족이나 친척,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끊임없이 정신적 공격을 받으면서도 관계를 끊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스스로 '오답'이라 규정한 모습에서 벗어나, 정답을 쥐고 있는 그들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비로소 실존적 외로움에서 벗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변에서 인정받고 인기가 많은 그들의 외형은 그 착각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어느 순간 그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조차 힘들어질 만큼 말이다.
웹툰 원작 드라마 '참교육'의 3화에서 인플루언서로서의 자아에 도취된 나르시시스트 학생에게 찍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교사들과, 결국 스스로 무너지는 그 학생의 모습은 이러한 실존적 외로움에 빠진 인간 군상을 잘 보여준다. 극적 연출로서 다소 과장된 측면은 있지만 기본적인 심리 구조는 일맥상통한다. 인플루언서 학생은 구독자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교사들은 익명의 대중과 주변 사람들의 비난을 떨쳐내지 못했다. 악플러에게 시달리는 연예인, 은근히 무시하고 비하하는 친구 곁을 맴도는 사람, 끊임없이 깎아내리는 부모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 모두 본질적으로 같은 심리적 굴레에 갇혀 있다. 나를 공격하는 이들이 결코 정답이 아니라는 자기 확신, 즉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자신의 참모습이 진짜 정답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오류가 발생한다. 이들은 타인의 비난과 무시를 오히려 자신을 채찍질해야 할 정답으로 오인하는 심리 구조를 공유한다.
사회는 어느 정도 인생의 정답지를 요구한다. 사회는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작동하는 거대한 기계와 같아서, 더 효율적이고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될 사람을 필요로 하며 적자생존의 끄트머리에 있는 이들을 배제하려 한다. 따라서 시대마다 이상적인 삶의 모습, 즉 정답과 같은 기준을 제시하지만 그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내 삶의 정답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특별하거나 우월해서가 아니다. 내 삶의 정답은 오직 나 자신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내 존재를 온전히 책임지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 아무리 닮은 사람도, 심지어 피를 나눈 가족도 내 삶의 정답이 되어줄 수는 없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유전적 구성부터 자라온 환경까지 전혀 겹치지 않는 고유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필연적인 진실을 받아들인다면, 무엇이 자기 삶의 정답인지는 어떤 목표를 향해 무엇을 해야 하는 도구적인 방법론이 아니라, 이처럼 모호하면서도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내면적인 마음가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