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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트라우마 극복

그냥 닥치는 대로 뭐든 해보기

트라우마는 정의 내리기 어렵다.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명확한 비극적 사건(전쟁, 기아, 사고, 폭행 등)을 겪거나, 특정 상황이나 사람을 극도로 마주하기 싫은 감정이 들 때 트라우마가 있다고 판단하기 쉽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정신과 의사나 임상 심리사의 오랜 면담과 관찰을 통해 추정하는 수준에 그친다. 이를 입증할 객관적인 생물학적 지표나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만, 일반적인 불안과 트라우마는 증상의 수준과 발생 기전이 다르며 뇌 신경 상태 역시 다를 수 있다는 점에는 많은 학자와 임상가가 동의하고 있다.

쥐에게 전기 충격 등의 자극을 지속적으로 가하면, 쥐는 불안해하면서도 고통을 피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자극이 계속되면, 쥐는 어느 순간부터 고통을 느껴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은 채 축 늘어져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처음 불안을 느낄 때는 교감 신경이 활성화되어 상황에서 벗어나려 적극적으로 노력하지만, 그런 노력이 소용없이 고통만 지속될 경우 배측 미주신경이 과활성화되어 노력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즉,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해 고통을 견디면서까지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만성적 무기력 상태는 굵직한 사건뿐만 아니라, 미세한 트라우마가 누적되어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다. 책 《미세 트라우마》에 따르면, 이러한 트라우마는 어린 시절의 불안정 애착과 일상에서 겪는 지속적인 좌절감이 쌓여 발생한다. 그 결과 불안한 상황이 닥치거나 해결해야 할 과제가 주어져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한편, 오랜 기간 트라우마는 무기력을 학습하는 이른바 '학습된 무기력'의 결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를 심도 있게 연구한 마이어(Maier)와 셀리그만(Seligman)은 오히려 그 반대라고 주장한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무기력을 택하는 것 자체는 본능적인 기본 기제이며, 오히려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통해 상황을 통제하고 극복하는 방법을 뇌가 '학습'한다는 의미다. 결론적으로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사람에게는 과거의 원인을 파헤치는 것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시도들을 통해 적극적으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학습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트라우마로 인해 쉽게 무기력에 빠지는 사람은 그 원인에 대한 반추를 멈춰야 한다. 대신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선택이나 만남은 피하되, 조금이라도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주저 없이 시도하며 희망적인 길을 모색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불안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무엇이든 시도하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무기력에 빠진 사람들을 한심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두 그룹은 전혀 다른 처지에 놓여 있다. 불안하더라도 시도할 수 있는 상태라면 상대적으로 양호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든 시도하는 것이 낫다는 점에서는 두 그룹 모두 지향해야 할 행동 방식이 같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 겪은 문제나 실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고통의 흔적, 즉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 하더라도 결국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선택과 행동이다. 자신의 취약점을 인지했다면 굳이 또다시 상처와 고통을 유발할 만한 시도는 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더라도, 해보고 싶거나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일단 시도해 보는 편이 낫다. 이는 인류의 오랜 지혜이자 그간의 신경과학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결론이기도 하다.

REFERENCES

미세 트라우마 - 베레나 쾨니히 저자(글) · 이은미 번역 , 21세기북스 · 2026년 03월 04일

Maier, S. F., & Seligman, M. E. P. (2016). Learned helplessness at fifty: Insights from neuroscience. Psychological Review, 123(4), 349–367. https://doi.org/10.1037/rev0000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