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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리끼리 만나는 진짜 이유 : 유유상종의 과학

끼리끼리 만나는 진짜 이유 :
유유상종의 과학

연애 상대를 고를 때, 우리는 종종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곤 합니다. 키, 성격, 심지어 교육 수준까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는 현상을 심리학과 진화생물학에서는 '동류교배(Assortative mating)'라고 부릅니다. 왜 우리는 나와 닮은 사람을 선택할까요? 그동안 학계에서는 사회적 배경이 비슷해서, 혹은 진화론적으로 유리해서 등 다양한 가설을 제시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한 연구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그러나 그동안 간과되었던 새로운 메커니즘을 제시합니다. 바로 우리의 '특성'과 '선호도'가 유전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특성과 취향의 대물림

연구진은 부모로부터 신체적, 심리적 특성(trait)뿐만 아니라 그러한 특성에 대한 선호도(preference) 역시 유전된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예를 들어, 키가 큰 특성과 키 큰 사람을 선호하는 취향이 모두 유전된다고 가정해 봅시다. 키가 크고 키 큰 사람을 좋아하는 부모가 만나면, 그 자녀는 '키가 큰 유전자'와 '키 큰 사람을 선호하는 유전자'를 동시에 물려받게 됩니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특정 특성을 가진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 특성을 선호하도록 유전자 수준에서 묶이게 되는데, 이를 '유전적 상관관계(Genetic correlation)'라고 합니다. 즉, 나와 비슷한 사람을 의도적으로 찾는다기보다는, 내가 가진 특성과 내가 끌리는 취향이 유전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100세대에 걸친 가상 짝짓기 시뮬레이션

연구진은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법인 '에이전트 기반 모델(Agent-based model)'을 활용했습니다. 300명의 가상 에이전트들이 100세대에 걸쳐 짝을 짓고 번식하는 과정을 구현한 것입니다. 에이전트들의 특성과 선호도는 전적으로 40개의 유전자 좌위(loci)에 의해 결정되도록 설정되었으며, 초기에는 특성과 선호도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대가 지남에 따라 에이전트들이 자신의 유전적 선호도에 맞춰 짝을 선택하자, 불과 몇 세대 만에 특성과 선호도 사이에 강력한 유전적 상관관계가 가파르게 상승하며 안정적인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특히 파트너를 고를 때 단 하나의 특성만 고려할 경우 상관관계는 완벽에 가까운 수치로 치솟았고, 최대 10개의 다양한 특성을 동시에 고려하더라도 수치만 다소 낮아질 뿐 뚜렷한 동류교배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반면, 선호도가 유전되지 않도록 설정한 통제 그룹에서는 이러한 동류교배가 전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진화적 이점 없이도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끌림

이 연구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동류교배가 반드시 생존이나 번식에 유리한 '적응적(adaptive)' 결과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연구진은 생존에 유리한 특성이 존재하는 상황, 즉 '선택압(Selection-pressure)'이 작용하는 모델도 함께 시뮬레이션했습니다.

그 결과, 유전적 상관관계는 초기 20세대 무렵까지는 상승했지만 이후 세대가 거듭될수록 오히려 서서히 감소하는 패턴을 보였습니다. 이는 자연선택이 강하게 개입할 때보다, 특별한 생존의 유리함이 없는 중립적인 상황에서 단순히 특성과 취향이 유전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끼리끼리 만나는 현상이 훨씬 더 강력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됨을 시사합니다.

물론 이 연구는 현실의 복잡한 유전 구조를 단순화한 '장난감 모델(Toy model)'을 사용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나이와 같은 비유전적 요인이나 복잡한 사회적 환경을 모두 반영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이 메커니즘이 현실의 동류교배를 완벽히 설명한다고 인과적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유전적 상관관계가 인간의 짝짓기 패턴을 예측하고 설명하는 강력한 기저 원리 중 하나일 수 있음을 수학적으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결론

우리가 운명이라고 믿었던 끌림의 이면에는, 부모 세대부터 차곡차곡 쌓여온 유전자의 조용한 연결고리가 숨어있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게 강렬하게 끌릴 때, 그것은 단순히 우연이나 사회적 환경의 산물이 아니라 내 안에 내재된 유전적 특성과 취향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짝짓기라는 복잡한 퍼즐을 푸는 데 있어, 이 연구는 '유전적 상관관계'라는 새롭고 매력적인 조각을 하나 더 얹어주었습니다. 다음번 나와 꼭 닮은 연인을 보며 신기해할 때, 우리 DNA에 새겨진 수많은 세대의 역사를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Harper K., Zietsch B.. Assortative Mating Is a Natural Consequence of Heritable Variation in Preferences and Preferred Traits. Psychological Science. 2025;36(10):771-779. doi: 10.1177/09567976251365900